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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타사라이 SK 역사 이야기

by 볼테르7 2025.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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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타사라이 SK 엠블럼 사진

갈라타사라이 SK(Galatasaray Spor Kulübü)는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소속으로 연고지는 이스탄불, 홈구장은 람스 파크(Rams Park)입니다. 2024-25 시즌 현재 쉬페르리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쉬페르리그의 절대 강자 갈라타사라이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갈라타사라이 SK의 창단

갈라타사라이 SK(이하 갈라타사라이)는 1905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창단된 축구 클럽으로, 튀르키예 최고의 명문 구단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클럽의 창립자는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 학생들이었으며, 유럽식 축구를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시작합니다. 당시 터키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고, 공식적인 축구 리그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클럽은 지역 내 다른 유럽계 팀들과 경기를 치르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갈라타사라이는 1950년대 이전까지 주로 이스탄불 리그에서 활동했으며,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튀르키예 축구의 강자로 자리 잡게 됩니다. 팀은 공격적인 스타일을 기반으로 상대 팀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줬고, 점차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1959년 튀르키예 1부 리그(현재의 쉬페르리그)가 출범하면서, 갈라타사라이는 튀르키예 축구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클럽은 리그 우승을 수차례 차지하며 터키 축구의 강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자국 리그에서의 활약과는 반대로, 유럽 무대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습니다. UEFA 대회에는 꾸준히 출전했지만, 경험 부족과 타 유럽 팀들과의 전력 차이로 인해 성과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갈라타사라이 SK는 창단 이후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며, 터키를 대표하는 축구 클럽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유럽 대항전에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보이며 더욱 큰 명성을 쌓게 됩니다.

갈라타사라이 SK의 스타플레이어

갈라타사라이 SK는 터키 축구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클럽 중 하나로,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했습니다. 특히 터키 리그뿐만 아니라 유럽 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많아, 갈라타사라이의 역사는 곧 터키 축구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제 갈라타사라이 SK의 대표적인 선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공격수 부문에는 하칸 쉬퀴르 (Hakan Şükür) 선수가 있습니다. 쉬퀴르는 갈라타사라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터키 리그에서 200골 이상을 기록했고, 팀의 수많은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2000년 UEFA컵 우승 당시 쉬퀴르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과의 경기에서 11초 만에 골을 넣어 월드컵 역사상 최단 시간 골 기록을 세웠습니다.

미드필더 부문에는 게오르게 하지(Gheorghe Hagi) 선수가 있습니다. FC 바르셀로나에서 이적한 하지는 은퇴할 때까지 5시즌 동안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우게 됩니다. 1996-97 시즌 30경기 14골을 넣는 활약을 펼치며 리그 우승을 이끌게 됩니다. 이후 갈라타사라이는 1997-98, 1998-99, 1999-00 시즌까지 4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갈라타사라이에 있는 동안 하지는 127경기를 뛰며 59골을 집어넣고 경기당 0.5골에 육박하는 골 기록을 세웠습니다. 맹활약한 하지를 추앙하는 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골키퍼 부문에는 페르난도 무슬레라 (Fernando Muslera) 선수가 있습니다. 우루과이 출신의 골키퍼 페르난도 무슬레라는 2011년에 입단하여 지금까지 갈라타사라이의 수문장을 맡고 있습니다. 무슬레라는 놀라운 반사 신경과 침착한 경기 운영 능력으로 팀을 여러 차례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특히 승부차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며 결정적인 순간 팀을 구해낸 적이 많습니다.

갈라타사라이 SK의 라이벌

갈라타사라이 최대의 라이벌은 이스탄불을 연고지로 함께 쓰고 있는 페네르바체 SK입니다. 두 팀 간의 라이벌전의 정식 명칭은 크랄라르아라스 데르비(Kıtalararası Derbi)로 대륙 간 더비라는 뜻입니다. 이스탄불 더비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1905년에 창단된 갈라타사라이와 1907년에 창단된 페네르바흐체는 서로 창단 멤버들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갈라타사라이는 주로 오스만 제국 귀족들로 이뤄졌던 반면, 페네르바체는 사병 및 하급 장교들로 이뤄진 군인들이 주축이 되어 창단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창기엔 갈라타사라이가 재정 등 운영면에서 앞서게 되면서 페네르바체를 압도했습니다.

부유한 귀족 팀과 가난한 군인 팀의 격돌이다 보니 처음부터 감정이 쌓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스탄불 리그 시절인 1950년대만 해도 서로 사이좋게 응원하고 경기가 끝난 후 승자를 격려하는 응원을 보내는 등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리그 1(후에 튀르키예 쉬페르리그로 개편)로 자리를 잡고 차츰 서로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TV란 매체의 등장과 같이 리그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경쟁을 언론과 기업들이 유도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런 비판이 어찌 됐든 엄청나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오며 팀 내 수익에 엄청나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맺음

갈라타사라이 SK는 튀르키예에서 최고 인기 구단으로 평가됩니다. 공식 서포터의 이름은 울트라슬란(ultraslan)으로 튀르키예에서 팬이 가장 많은 축구 구단이며 전 세계에 2,500만 명 이상의 팬이 있다고 합니다. 튀르키예의 맹주 갈라타사라이의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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