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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FC 역사 이야기

by 볼테르7 2025.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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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FC 역사 이야기

토리노 FC(Genoa Cricket and Football Club SpA)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소속의 프로 축구 클럽으로 연고지는 피에몬테 주 토리노, 홈구장은 스타디오 올림피코 그란데 토리노(Stadio Olimpico Grande Torino)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024-25 시즌 현재 세리에 A 12위입니다. 토리노 FC의 역사에 대해서 그란데 토리노, 전설적인 선수들, 라이벌 관계를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란데 토리노

토리노 FC(이하 토리노)의 황금기는 ‘그란데 토리노(Grande Torino)’라는 명칭과 함께했습니다. 1942년에서 1949년에 걸쳐 세리에 A 5연패를 달성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당시에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있는 선수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고, 세리에 A의 맹주로 손꼽히는 유벤투스 FC조차 당시에는 토리노에 명함조차 못 내밀 정도였습니다.

1948-1949 시즌 선두를 달리고 있던 토리노는 SL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를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길에 타고 있던 비행기가 수페르가 성당의 외벽에 충돌하면서 18명의 토리노 선수를 비롯한 탑승자 전원 3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수페르가의 비극(Tragedia di Superga)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뮌헨 비행기 참사,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공기 참사, 라미아항공 2933편 추락 사고와 더불어 최악의 축구 관련 항공 사고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당 시즌을 우승한 토리노였으나, 다음 스쿠데토 획득까지 27년이 소요될 정도로 침체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사고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다수 사망했으며 구단의 스타 플레이어 발렌티노 마촐라도 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는 토리노 클럽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축구 역사 자체를 바꿔놓은 사건이었고, 이 사건을 겪은 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1950년대에 열린 월드컵 세 대회(1950 브라질, 1954 스위스, 1958 스웨덴) 모두 조별 리그 탈락 또는 본선 진출 실패를 경험하며 암흑기에 맞이합니다.

토리노 FC의 전설적인 선수들

토리노의 빛나는 순간을 함께했던 선수들은 클럽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서도 위대한 선수로 평가됩니다.

토리노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돌 평가되는 인물은 바로 발렌티노 마촐라(Valentino Mazzola)입니다. 그는 ‘그란데 토리노’의 중심이었습니다. 마촐라는 기술도 훌륭했지만 거기에 엄청난 체력과 양발 사용 능력, 기술, 빠른 스피드를 갖췄기 때문에 말 그대로 그를 상대하는 수비수들에게는 악몽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뛰어난 플레이 메이킹과 인사이드 포워드임에도 현대 축구라면 중앙 미드필더로 분류될 만한 수비 능력, 주장으로서의 카리스마, 작은 키에도 공중볼 다툼에 우위를 점하게 하는 점프력까지 갖추고 있던 이탈리아 축구계 최초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평가됩니다.

미드필더 부문에는 마촐라와 함께 ‘그란데 토리노’의 일원이었던 에지오 로이크(Ezio Loik) 선수가 있습니다. 로이크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근육질의 강한 몸매를 가진 선수였습니다. 로이크는 훌륭한 수비 능력, 끈질긴 커버력과 태클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양발로 강력한 슛을 날렸기 때문에 종종 팀 내 득점 선두권에 오르곤 했습니다. 로이크는 볼 컨트롤이 좋았고 볼에 대한 안정성이 매우 높았으며 전술적으로 매우 똑똑했고 시야도 좋았습니다.

수비수 부문에는 마리오 리가몬티(Mario Rigamonti) 선수가 있습니다. 리가몬티 역시 ‘그란데 토리노’의 일원으로 큰 키에 민첩성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습니다. 리가몬티는 피지컬뿐만 아니라 공중볼 처리 능력 등 기술적으로 뛰어났습니다. 투지, 속도, 예측 능력, 경쟁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유명했습니다.

토리노 FC의 라이벌

토리노의 숙명의 라이벌은 단연 유벤투스 FC입니다. 두 팀 모두 토리노를 연고로 하고 있으며, 양 팀 간의 라이벌전은 ‘데르비 델라 몰레(Derby della Mole)’라고 부릅니다. 이 명칭은 토리노의 랜드마크이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로고로도 형상화했던 몰레 안토넬리아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토리노와 유벤투스의 라이벌 관계는 1907년 유벤투스 경영진 내부의 갈등으로 시작됩니다. 이 갈등으로 일부 관계자들이 클럽을 떠나 토리노를 창단하게 됩니다.

토리노의 황금기, ‘그란데 토리노’의 1940년대에는 토리노가 유벤투스를 압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비극적인 ‘수페르가 항공 사고’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두 팀의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1950년부터는 유벤투스가 이탈리아 축구계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자국 리그뿐만 아니라 유럽 무대에서도 성과를 내게 됩니다. 반면 토리노는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1975-76 시즌, 토리노가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며 유벤투스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적도 있었으나 현재까지 역대 전적에서 유벤투스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유벤투스에 비해 약한 전력을 보유한 토리노지만, 팬들 간의 라이벌 관계는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 외 ACF 피오렌티나, 제노아 CFC와도 경쟁관계를 보였지만 유벤투스와의 라이벌 관계만큼 치열하지는 않았습니다.

맺음

‘그란데 토리노’라는 전설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토리노 FC. 현재는 리그 중위권의 약화된 전력으로 유벤투스 FC와의 라이벌 관계에서도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울트라스 문화를 정착시킨 최초의 축구 클럽으로 알려져 있는 토리노가 스쿠데토를 언제쯤 다시 차지할 수 있을지 기대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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