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라치오(Società Sportiva Lazio S.p.A)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소속의 프로 축구 구단입니다. 연고지는 이탈리아의 라치오 주 로마이며, 홈구장은 스타디오 올림피코(Stadio Olimpico)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024-25 시즌 현재 세리에 A 4위, UEFA 랭킹 25위입니다. SS 라치오의 역사에 대해서 창단 배경과 전성기, 더비를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1. SS 라치오의 창단 배경
SS 라치오(이하 라치오)는 1900년 1월 9일, 이탈리아 라치오 주의 로마에서 창단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연고로 한 이 구단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스포츠 문화가 자리 잡아가던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육상과 사이클 같은 스포츠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기에, 처음에는 멀티스포츠 클럽으로 출발했습니다. 라치오는 창립자 루이지 비고렐리(Luigi Bigiarelli)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당시 로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27년 이탈리아 정부의 주도하에 로마 지역 내의 여러 클럽들이 합병되면서 AS 로마가 탄생하게 되었고, 라치오는 합병을 거부하며 독자적인 구단 운영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AS 로마와 SS 라치오의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세리에 A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중 하나인 "로마 더비"가 탄생하는 배경이 됩니다. 초창기 라치오는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었고, 1929년 세리에 A가 출범할 당시 창립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라치오는 팀 전력이 강하지 않아 중위권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단은 점차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1958년에는 처음으로 코파 이탈리아(이탈리아 컵) 우승을 차지하며 트로피를 거머쥐게 됩니다.
2. SS 라치오의 전성기
라치오가 강팀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1970년대와 199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1973-74 시즌, 라치오는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당시 팀을 이끌었던 주요 선수로는 지오르지오 키나글리아(Giorgio Chinaglia), 루차노 레 체코니(Luciano Re Cecconi)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키나글리아는 라치오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해당 시즌 리그에서 24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치며 팀의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당시의 라치오는 철저한 수비 조직력과 빠른 역습을 활용한 전술로 경쟁 팀들을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1974년 이후 라치오는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1980년대에는 세리에 B로 강등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후반부터 점차 팀을 재건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에는 구단주 세르지오 크라니오티(Sergio Cragnotti)의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다시 강팀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크라니오티는 스타 선수 영입전략을 통해 팀 전력을 강화해 나갔고, 마침내 1999-2000 시즌에 두 번째 스쿠데토를 차지하게 됩니다. 1999-2000 시즌은 라치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즌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당시 스벤-예란 에릭손(Sven-Göran Eriksson) 감독이 팀을 이끌었으며, 팀에는 알레산드로 네스타(Alessandro Nesta),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Juan Sebastián Verón), 파벨 네드베드(Pavel Nedvěd), 시니사 미하일로비치(Siniša Mihajlović), 디에고 시메오네(Diego Simeone), 마르셀로 살라스(Marcelo Salas) 등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라치오는 리그 우승뿐만 아니라 코파 이탈리아, UEFA 슈퍼컵에서도 우승하며 3관왕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이 시기 라치오는 단순히 세리에 A를 넘어, 유럽 무대에서도 강호로 인정받는 팀이 되었습니다.
3. SS 라치오의 더비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Derby della Capitale), 흔히 로마 더비로 불리는 이 경기는 SS 라치오와 AS 로마가 맞붙는 이탈리아 세리에 A의 가장 뜨거운 라이벌 경기 중 하나입니다. 라치오는 전통적으로 로마 북부 및 중산층과 군 관계자들이 지지하는 팀으로 여겨졌고, AS 로마는 로마 남부와 노동계층이 선호하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경기장 안팎에서 더욱 치열한 경쟁을 만들게 됩니다. 단순한 축구 경기 이상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도 주목받는 경기입니다. 로마 더비는 격렬한 충돌과 폭력적인 사건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경기장 내에서뿐만 아니라 경기 전후로 양측 팬들 사이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79년 라치오의 팬 빈첸초 파파렐리(Vincenzo Paparelli)가 경기 도중 로마의 팬이 쏜 조명탄에 맞아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로마 더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위험한 경기 중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장에서는 수많은 명승부가 펼쳐졌습니다. 1998-99 시즌,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라치오가 로마를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3년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는 라치오가 AS 로마를 1-0으로 이기며 로마의 자존심을 건 전쟁에서 다시 한번 승리하게 됩니다. 당시 결승전에서 시나드 루리치(Senad Lulić)의 결승골이 터지면서 라치오 팬들은 열광했고, 이 경기는 오늘날까지도 라치오 팬들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맺음
SS 라치오는 1900년 창단 이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입니다. 1974년과 2000년 두 차례의 세리에 A 우승, 다수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그리고 유럽 대항전에서의 활약을 통해 강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근에는 다시 한번 리그 우승을 목표로 경쟁력을 갖추며 팬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SS 라치오가 어떤 성과를 거둘지, 그들의 미래가 더욱 기대됩니다.